한국.. 동네북이구나...
참 가슴이 아프다 ㅜㅜ
정말 이리채이고 저리채이고.. 다들 한국을 호구로 보는구나..
중국놈들 서울 한복판에서 쌩난리를 쳐도 보고만 있어야 되고
아무도 안먹는 별 희한한 쓰레기 미국이 떠넘겨도 돈주고 사먹어야 되고
북한이 우리나라 사람을 쏴죽이든 말든 그야말로 아무 힘도 없고
이제는 독도? ㅎㅎㅎ 일본 원숭이들도 질 수 없다는 듯 한건 해주는구나..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나라에 힘이 없는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국가적 자존심같은건 안중에도 없는 무리들이 권좌를 차지하고 있는 한,
또한 아직까지 그런 무리에게 맹목적 지지를 보내는 멍청한,
그야말로 멍청한 일부 국민들이 각성하지 못하는 한, 이는 어쩌면 필연이 아닌가 한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날거고 또 그때마다 국민들은 발끈하겠지만
저 친일파의 후예 한나라당, 그리고 빌어먹을 조중동, 뉴라이트 따위들이 득세하는 이상
우리나라는 그 무엇에도 제대로 대응못할게 확실해보인다.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자들은 어느시대 어느사회에나 있어왔다.
그런 무리들은 일제 강점기엔 친일파의 형태로 나타났고,
그들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는건 오직 일신의 안녕과 개인의 영달일 뿐이지
국익이니 국가적 자존심이니 하는건 개풀뜯는 소리에 다름아니었다.
세월은 흐르고 다시 되찾은 대한민국의 주권,
그러나 불행히도 친일의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채
미 군정을 거쳐 친일파와 그 후예들은 또다시 새 나라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나라를 찾기 위해 가산을 탕진해가며 만주 중앙아시아를 전전하며 투쟁하던 독립투사와 그 후예들은
쥐꼬리만한 보상과 대물림되는 가난을 숙명으로 하는 대한민국.
친일의 청산이 어그러진 순간부터 이 나라는 시작부터 첫단추가 잘못 꿰였다.
근본적으로 정의가 발붙이기 힘든, 빌어먹을 나라다.
기회주의자는 승리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바친 이는 대접받지 못하는,
정의가 사라진 그런 나라에서 그 누가 손해볼거 뻔히 알면서
국익이니 국가적 자존심이니 하는 명제 아래 헌신할 것인가?
어떤 나라가 툭툭 치든 때리든, 그저 맞고 참아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내줄건 다내주면서 챙길건 전혀 못챙기는 이런 굴욕 외교는
나라야 어찌되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마인드로 무장된 저 기득권 세력이 몰락하지 않는한
끊임없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다.
이 모든 패악의 근원인 친일파와 그 후예들의 세력은
대한민국 50년에 걸쳐 그 뿌리가 너무나도 견고해져
이젠 어떻게 건드리기조차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통탄할 일이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알아가고 있다는걸 희망으로 삼는다.
프랑스가 부럽다. 라 마르세예즈의 나라 프랑스...
아래는, 출처 기억은 잘 안나지만 어디선가 긁어온 자료.
1944년에 연합군이 독일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낸 후, 프랑스의 드골 장군은
나치 협력자 처단을 위한 훈령을 발표, 이에 나치에 조금이라도 협조했던 100만 명
가량의 프랑스 인이 체포 구금됨. 이중 6,763명에게 사형선고를, 26,529명에게
유기 징역형을 내렸다 (그러나 이 수치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처형된 숫자이며
비공식집계로는 즉결처분이나 약식재판을 통해 처형된 사람이 무려 12만명에
달한다는 설, 1만여 명에게는 강제노역, 약 3천명에게는 중노동 무기형)
(당시 나치에 협력한 비시정권의 수장인 페탱을 포함한 3부 요인들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패탱은 감옥에서 자살합니다.)
( 사회적 지배층이었던 정치, 언론, 작가, 시인, 예술가, 기업가, 종교인 등등
공적권한을 가진 자들에게는 상당한 중형이 선고됐다.)
- 언론인 처벌 사례 몇가지 -
- 일간 '오주르디'의 편집인 쉬아레즈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 ,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 -> 총살,재산몰수
- 일간 '누보 땅'의 발행인 쟌 뤼세르 ( 신문협회의 회장) -> 사형,재산몰수
-수필가 겸 문학비평가 브라질라쉬
"프랑스 노동자는 독일전쟁에 마땅히 파견되야 한다", 독일의 침략을 찬양 -> 사형
- '르 마뗑'지의 논설위원 스테판 로잔느
독일찬양 사설 집필 -> 20년의 독방구금& 재산몰수
특히, 이중 95,000명에게 "비국민 판정" 이라는 특이한 선고를 내렸는데 이는
시민권 박탈 및 사회적 매장 조치로 이 선고를 받은 사람은 프랑스 내에서 선거권,
공직진출 자격, 무기 소유권등을 가질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중 독일군 점령지역에서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사는
국유화 조치, 그 사주와 경영진은 법적 처벌을 받았다. 당시 처벌을 받지 않은
신문사는 르 피가로를 비롯해 3개사 밖에 없었다.
( 이들 3개신문사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마자 자진 휴간해 버렸다)
-> 프랑스판 경향, 한겨레 군요.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색출 및 처벌은 40년 간 계속 된다. 이는 1964년 통과된
'전쟁 범죄에 관한 시효제거를 규정한 법률'에 의한 것으로,
반민족, 반인륜 범죄에 대한 시효자체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 지라도,
또 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드골이 장담을 할 정도로,
프랑스의 반역자 대숙청은 나치 협력자의 세력이 다신 재기 할 수 없도록
완전 궤멸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다른 유럽 지역도 마찬가지 였다.
반역 행위로 구속된 사람의 숫자는 10만 명당 프랑스 94명, 벨기에 596명,
네덜란드 419명, 노르웨이 633명 이었다.
특히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는 소급입법을 만들어 기소하고, 폐지시켰던
사형제도까지 부활시켜 처단하였다.
해방 후 프랑스의 정치무대에서는 민족반역자나 나치 협력자의 그림자도 찾아 볼수
없는 민족정기와 정통성이 살아 넘치는 참신하고 민주적이며 깨끗한 정치인과 언론인들로
완전히 교체됐다. 한국 정치로 말하자면 항일독립투사들로 메웠고 친일민족배반자들은
처벌을 받거나 피선거권, 공직자 진출권을 박탈해 버려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했다.